함피의 석양


과연 사진이라는 것은 인간의 기억을 보완해줄 수 있는 것인가?
아니면 그 왜곡된 현상을 통해 감정을 변화시키는 것일까?


2000년 어느 날 나는 함피의 유적을 무심코 걷고 있었다.
네팔에서 인도로 넘어온지 한달정도 됬을 때였다.
조금은 무리한 일정과 뜻하지 않은 병치레로 슬슬 힘이 들기 시작했었고,
이를 포함한 여러가지 이유로 인도여행에 대한 타성에 젖을 쯤이었던 것 같다.

인도여행자들에게서 가장 많은 탄성을 자아내던 이곳도
당시 나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간이역으로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.
내리쬐는 태양빛에 지친 몸을 이끌고 어슬렁 거리다가 어느 덧 황혼이 찾아왔다.
하루의 여정을 마치고 저녁이나 때울까하고 함피바자의 끝부분에 다다랐을 때였다.
천천히 걸어가면서 고개를 들었을 때,
나는 보았다.

거대한 비루팍샤사원의 고뿌람을 뒤로하며 넘어가는 해를,
그 일몰의 붉은 빛 속에서 누구라고 먼저할 것 없이
하나둘 자신들의 가게 앞을 나와 하루의 묵은 때를 쓸어내는 아낙들,
그 피어나는 먼지 속에 뛰노는 아이들과 그들을 따라 꼬리치는 강아지들...
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함피의 진정한 아름다움을...

분명 쓸어도 쓸어도 없어지지 않는 먼지인데,
흙밭에서 쓸어도 다시 돌아올 흙인데,
사람들은 하나씩 비를 들어 먼지를 하늘로 올리고 있었고,
풍진과 일출, 그리고 그 안에서 당연한 하루를 사는 사람들은
서로를 아름다운 하나로 어우러지고 있었다.

그 때의 그 느낌, 그 색감, 사람들의 소리와
그 속에 홀로 남아 이방인의 감정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.
아니 생각되질 않는다. 그저 아직도 느낄 뿐이다.

이 때 나는 그 아름다움에 반하여 사진기를 들어 한장을 남기려 했다. 나중에 꺼내본 사진속에는 안타깝게도 그리고 당연히 나의 느낌이 남아있질 않았다. 전혀 느낌이 다른 사진이었다.
그 순간은 이미 떠나버렸지만 나는 이 사진을 보면서 아직도 그 감정을 꺼내려한다. 그러면서 내가 걱정하고 두려워하게 된 것은 이 왜곡된 화상을 통해 내가 가진 감정또한 변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.
내가 느낀 감정과 감동은 표현할 수 없는데,
내가 의도하지 않은 모습은 사진에 담겨있다.
시각적인 강조가 우선일지 마음 속의 여운이 앞서는지는 모르겠으나, 지금은 전자가 후자를 변질해갈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선다.

2001년 봄, 고아
KENOX Z145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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